2024.05.05 (일)

  • 흐림속초17.8℃
  • 비17.0℃
  • 흐림철원15.8℃
  • 흐림동두천15.1℃
  • 흐림파주14.5℃
  • 흐림대관령15.1℃
  • 구름많음춘천16.7℃
  • 비백령도13.2℃
  • 흐림북강릉20.1℃
  • 흐림강릉19.6℃
  • 흐림동해17.5℃
  • 흐림서울16.8℃
  • 비인천17.2℃
  • 흐림원주18.8℃
  • 구름많음울릉도18.4℃
  • 흐림수원16.0℃
  • 흐림영월13.4℃
  • 흐림충주16.1℃
  • 흐림서산18.7℃
  • 흐림울진18.1℃
  • 비청주18.6℃
  • 흐림대전17.4℃
  • 흐림추풍령18.1℃
  • 비안동15.5℃
  • 흐림상주17.7℃
  • 흐림포항18.3℃
  • 흐림군산19.9℃
  • 흐림대구20.3℃
  • 흐림전주20.8℃
  • 박무울산17.5℃
  • 흐림창원18.5℃
  • 비광주19.5℃
  • 흐림부산19.3℃
  • 흐림통영17.6℃
  • 비목포18.6℃
  • 비여수16.8℃
  • 비흑산도16.6℃
  • 흐림완도18.5℃
  • 흐림고창18.7℃
  • 흐림순천16.9℃
  • 박무홍성(예)17.0℃
  • 흐림15.7℃
  • 비제주20.7℃
  • 흐림고산18.9℃
  • 흐림성산19.0℃
  • 비서귀포19.3℃
  • 흐림진주16.6℃
  • 흐림강화15.4℃
  • 흐림양평16.8℃
  • 흐림이천17.1℃
  • 흐림인제14.9℃
  • 흐림홍천15.9℃
  • 구름많음태백16.4℃
  • 흐림정선군12.3℃
  • 흐림제천14.1℃
  • 흐림보은15.5℃
  • 흐림천안16.5℃
  • 흐림보령20.3℃
  • 흐림부여17.9℃
  • 흐림금산18.6℃
  • 흐림17.1℃
  • 흐림부안20.1℃
  • 흐림임실17.9℃
  • 흐림정읍20.4℃
  • 흐림남원18.6℃
  • 흐림장수16.8℃
  • 흐림고창군19.7℃
  • 흐림영광군18.6℃
  • 흐림김해시19.0℃
  • 흐림순창군19.2℃
  • 흐림북창원20.5℃
  • 흐림양산시18.5℃
  • 흐림보성군18.1℃
  • 흐림강진군19.1℃
  • 흐림장흥18.1℃
  • 흐림해남18.9℃
  • 흐림고흥18.6℃
  • 흐림의령군17.3℃
  • 흐림함양군17.1℃
  • 흐림광양시17.0℃
  • 흐림진도군19.1℃
  • 흐림봉화12.7℃
  • 흐림영주14.6℃
  • 흐림문경17.1℃
  • 흐림청송군12.7℃
  • 흐림영덕15.5℃
  • 흐림의성16.9℃
  • 흐림구미19.1℃
  • 흐림영천16.7℃
  • 흐림경주시16.8℃
  • 흐림거창16.2℃
  • 흐림합천16.4℃
  • 흐림밀양17.8℃
  • 흐림산청16.2℃
  • 흐림거제20.5℃
  • 흐림남해17.4℃
  • 흐림18.8℃
기상청 제공
디지털에듀뉴스 로고
[가치같이 BOOK] _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신

[가치같이 BOOK] _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

존재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위트 있는 질문이 담겨 있는 철학 이야기

스크린샷 2024-03-27 181114.png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학창 시절 내내 일기를 썼었는데, 당시 쓴 일기의 꽤 많은 분량이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졌었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모범생의 범주에 들어가기엔 너무 답답했고 날라리 학생들 사이에 끼기에는 생각이 바른 축에 들었기에 여기서는 저기를, 저기서는 여기를 동경하며 어정쩡한 태도로 방황과 혼란 속에서 ‘나’를 찾았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공동체를 생각하는 의식 있는 청년이나 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소시민적 청년, 혹은 젊음을 즐기는 유유자적하는 청년 등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정치 색깔도 진보와 보수의 어디쯤에 비겁하게 걸쳐 있었고, 라이프 스타일도, 인생관도 뭐 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회색지대의 ‘경계인’. 어느 날인가는 친한 친구에게 ‘양시론이야말로 최악’이라는 비난을 듣고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정체성이 불분명한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지천명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천명을 알기는커녕 회색지대에 더 깊게 자리 잡아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런 자신을 혼란스럽게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정도. 세상에 이 같은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고, 이 역시도 하나의 삶의 포즈로 규정할 수 있으며 혹은 규정되지 않음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정체성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스크린샷 2024-03-27 182514.png


<구렁이 족보>로 이름을 알린 임고을 작가의 두 번째 이야기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에는 나(혹은 우리)와 같은 또 하나의 경계인인 ‘고기오’가 있다. 고기오는 일찌감치 부모를 잃고 머리까지 다쳐서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정체 미상의 생명체이다.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세계에 던져진 존재’ 그 자체인 고기오는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찾기 위해 세계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타조, 펭귄, 두더지 등 여러 집단 속에 들어가 생활하지만,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다 자신과 가장 비슷한 외양을 가진 닭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닭이라고 주장하는 고기오와 고기오를 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기오는 보통의 닭보다 그 크기가 훨씬 크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닭들의 갈등 속에서 고기오는 자신이 닭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기오가 스스로 닭임을 증명하려 노력하면 할수록 닭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또한 커진다는 것인데 이는 결정적으로 고기오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감추고 닭이 되려는 고기오가 닭으로 억지로 인정받을 뻔한 순간, 고기오는 위기에 처한 다른 닭을 구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오르며 스스로 닭이 되길 포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일을 계기로 닭들은 고기오가 닭 무리의 일원임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 닭이기를 포기하고 날아오르며 자신을 드러낸 고기오가 닭이 아닌 ‘고기오’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외모나 성별, 인종 등 개체의 정체성을 집단으로 규정짓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존재의 정체성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혹은 ‘무엇을 하느냐’로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종종 던지는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등으로 대체되거나 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후에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존보다 앞서는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기에 실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결국 ‘나다움’이라는 정체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나답다’라는 말이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임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표지를 다시 보자. 이 책의 표지 일러스트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기오가 아니다. 날 수 있는 고기오를 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닭들의 모습, 닭들이 날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책 전면에 담겨 있다. 이는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이 나와 다른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의 의미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들과 달리 날 수 있는 고기오를 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 날기 위해 노력하는 닭들의 모습을 통해서 ‘다름’이라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집단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정체된 정체성이 아닌 가능성을 품은 열린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모호한 경계인에서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볼 수 있게 해준 책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를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하며 글을 마친다.

 

스크린샷 2023-12-01 174358.png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