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짧았던 설 연휴가 지났다. 동장군도 이제 슬슬 지쳐가는지 제법 날이 따뜻해지면서 길고 긴 겨울방학도 7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자각에 학부모나 아이들 모두에게 요즘 말로 현타가 오는 시기다. 그나마 예전과 달리 꼭 해가야 하는 방학 숙제가 거의 사라졌기에 밀린 숙제 하라는 잔소리가 줄어들긴 했지만, 도화지에 원을 그리고 생활계획표부터 만들고 꼬박꼬박 일기를 써서 학교에 제출했던 학창 시절을 보낸 학부모 세대에게 학원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스트레스와 걱정, 짜증 등 감정의 종합 선물세트가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 아이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걱정이 ‘내가 잘못 키워서 그런가’ 하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위안을 받아보자.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이라는 책을 손에 잡아 보자.
2012년 신간 중 최고의 책 20선을 뽑는 ‘일본 신서 대상’에 오른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의 저자 미나미노 다다하루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13년간 근무하며 학생들의 무기력하고 산만한 수업 태도와 의욕 저하 등의 문제로 고민하다 그 원인이 학생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쓰기에 앞서 본인이 영어 교사에서 학생들의 생활 지도가 중심인 기술과정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로 전향했다고 하니 그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이 책의 제목 <팬티 바르게 개는 법>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저자가 강조한 청소년의 ‘생활 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의 4대 자립이 바로 ‘팬티 개는 법’ 같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팬티 개는 법’ 같은 사소한 일부터 해내야 자신의 생활을 오롯이 영위해 갈 수 있는 ‘생활력’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팬티 개는 것부터 시작해 본인의 도시락을 스스로 싸고 자신의 용돈을 관리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생활력’을 기르는 것이 국, 영, 수를 배우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우린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의미는 사람마다 ‘팬티를 개는 법’이 다름을 통해 이 사회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팬티를 개는 작은 일에서부터 서로의 차이를 느끼고 인정하는 과정이 사회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이 가사 노동의 가치와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공동체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까지 서서히 나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 <팬티 바르게 개는 법>에 담겨 있다. 말 그대로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외국의 해군 장교가 한 연설에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불 정리부터 시작하라”고 말하는 영상이 많은 이들의 반향을 얻은 적이 있다. 지금도 이 영상을 각종 숏폼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많아도 실천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어릴 때 잘못 만들어진 ‘세 살 버릇’ 때문이 아닐까? 당장 오늘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그건 내가 치울 테니, 넌 가서 영단어라도 외워”라는 말 대신 “공부하기 전에 네 빨래부터 개도록 해”라고 말해 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