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애벌레의 형태로 대부분의 일생을 살다가 인생의 끝자락에 나비로 날개가 돋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날개가 돋는 과정에서 번데기가 되며 마치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몸의 형태만을 변형한다. 자기 자신의 형태에 집중하고 외부와의 정보교류를 차단한 상태가 번데기이다.
생활방식이 달라지려면 몸의 형태와 삶에 대한 행동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사람도 생활방식이 달라지려면 몸과 마음에 변화가 필요하다. 이때, 변화는 털갈이하듯 수시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생에서 한두 번의 큰 변화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아이는 사춘기를 거쳐 어른으로 우화한다.
이때,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은 자신의 세계관에만 심취하고 외부와의 소통을 꺼리며 외부 정보를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학생들은 극도로 적은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제한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인다. 이런 이유로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은 망상에 가까운 이상한 생각을 자주 한다.
"중2병"이나 "흑염룡"과 같은 용어는 이러한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춘기의 특성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최선의 선택을 제공하여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하지만 자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많은 학생은 현실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모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모는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 때문에 자식을 설득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반항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사람들은 사춘기의 반항을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에 만들어져있는 세상의 규범이 옳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이에 한몫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정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 나간 사람도 옳은 소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춘기의 반항을 세계관의 충돌로 바라보아야 한다. 즉, 누가 정말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춘기의 반항은 학생의 삶을 주도적으로 바꾸어 줄 수도 있다. 부모에게서 주어진 삶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실험적이고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좀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삶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아무런 반항 없이 외부에서 주입된 사상을 그대로 채화한 학생들은 그들의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번아웃이 오게 된다. 잠깐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오래갈 수는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기존의 성공사례는 더 이상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선진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더 좋은 형태로 계량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의 사례를 모방하고 계량해서 성장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더 이상 따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빠르게 학습하여 학습한 바를 실상에 적용하는 인재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이들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사고력 있는 인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역사적으로 천재나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세계관이 교과 과정에 담겨 있다. 이들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이러한 천재들과 영웅들은 자신들의 선배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에서 이러한 세계관을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이유는 아직까지 구식이고 노후화된 평가시스템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업데이트되지 않아서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지식과 통찰력을 얻을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과거에 “이렇게 쓸모없는 공부는 왜 해요?”라고 말하던 학생들은 바보 취급을 받았다.
공부를 못하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무시를 당하기 일 수였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학생들의 질문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