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TV프로그램 ‘티쳐스’가 화제다. 채널A에서 방송하는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는 공부와 성적이 고민인 중•고등학생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진이 직접 코칭 해 성적을 올려주는 에듀 솔루션 버라이어티다.
지난주 출연한 한 여학생은 고1 첫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돌연 자퇴를 선택했다. 알고 보니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이었다. 자퇴하기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엄마는 ”너만 행복하다면 대학 안 가도 돼“라고 말해준다. 그럼에도 자퇴한 학생은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티처스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방송 중 자퇴한 여학생의 친언니도 출연했는데, 언니 역시 고등학교 자퇴 후 정시로 대학에 입학한 케이스였다. 언니는 유경험자로서 자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결과로 보면 자신의 자퇴가 잘 된 선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자퇴로 입시에 성공한 게 아니라 실상은 방황 끝에 어렵게 마무리했던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 자신을 보고 동생이 자퇴를 쉽게 결정했을까 봐 나쁜 본보기가 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자 MC는 “예전에는 자퇴가 불량학생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요즘은 입시 전략 중 하나의 트렌드이기도 하더라”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스튜디오에 나온 강사들의 의견이 분분했는데, 수학 일타강사 정승제는 요즘 극상위권 학생들은 '잔류파'와 '자퇴파'로 나뉜다며, 자퇴파의 경우, 자퇴하고 아예 고교내신을 0으로 만들어 수능 만점을 노리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일타강사 조정석은 학교에서 배우는 소셜 스킬도 중요하다며 고교 자퇴 결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퇴가 입시 전략일 수 있다니, 현재 우리 사회 입시제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미 올여름, 고등학생들의 자퇴 문제는 한차례 이슈가 됐다. 한 유명 학원이 조사한 결과, 자퇴하는 고등학생이 크게 늘고 있고, 그것이 대입 준비에 올인하기 위해서라는 것. 일반 고등학교 1학년 중 자퇴생 수는 올해 8천50명으로 2년 사이 60%나 늘어났고, 특히 강남, 송파 지역 학생들의 자퇴율이 높았다고 한다. (SBS 뉴스 2023-08~15보도)
교육 정보를 주고받는 맘카페에서도 ’자퇴’와 관련된 고민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티처스‘방송에 출연한 고등학생의 경우 건강상의 문제가 자퇴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였지만 방송 직후, 기자의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고교 자퇴 문제는 또 한 번 이슈가 됐다.
그래서 상위권 중·고등학생 자녀를 두었거나, 자퇴한 고등학생 지인을 둔 학부모들을 만나 더 이야기 나눠 봤다.
-우리 큰애 작년에 졸업했는데, 고1 때 자퇴한 친구 있었어요.
-우린 조카가 고1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올해 대학 갔어요.
-저는 주변에 지인 아들이 고1 때 자퇴했어요.
좀 놀랐습니다. 자퇴한 고교생 이야기를 생각보다 쉽게 접하는 것 같아서요. 다들 고1 때 자퇴를 했네요?
-1학년 1학기 시험 한 번만 망쳐도 수시로 가기 어렵대요. 그래서 정시로 방향 틀고 자퇴한다네요. 선생님들도 말리지 않는다고 하고요.
-’내신세탁‘한다고 하잖아요. 상위권은 상위권이라 자퇴하고, 하위권은 하위권이라 자퇴하고...
-시험 못 본 애들도 자퇴하지만, 요즘 정시로 정한 친구들은 내신, 수행 준비로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 자퇴한다고 하더라고요.
지인의 자녀들이 자퇴한 이유는 뭐였나요?
-제 아들 친구는 의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고1 첫 시험에서 국어 과목이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왔나 봐요. 그래서 내신을 포기하고 정시 준비를 한다고 자퇴했어요.
-우리 조카는 예고 다니던 아이였어요. 연습시간이 부족해서 고민하다가 자퇴했고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입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지인 아들은 목표로 하는 대학교가 있어서 그에 맞는 고등학교를 찾아 진학했는데, 막상 가 보니 생각과 달라서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본 케이스예요.
학부모로서 입시를 위한 자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교 다니면서 멘탈 잡기 힘들다면, 자퇴하고 입시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봐요. 실제 방송에 나온 아이 엄마가 자녀가 문제 푼 것 보다, 공부하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에 더 좋아했잖아요. 그만큼 혼공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자퇴 후 입시 전문 학원 보내기도 하잖아요? 일 년에 몇천씩 학원비 감당할 수 있는 부모의 재력이 부러울 뿐이네요.
-고1 때는 누구나 자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고2, 고3 자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그 고비를 넘기면 자퇴 생각을 덜 해서 그런 걸 거고요.
-아이들이 중3 때부터 입시 스트레스를 받다가 고1 첫 시험쯤 번아웃이 온다고 해요. 그 얘기 들으니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긴 하더라고요. 아이들도 안쓰럽고.
만약, 내 아이가 자퇴를 말했다면?
-우리 아들도 고1 때 고민하긴 했어요. 결국은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내신을 포기했죠? 하하.
-학생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티처스에 일타강사분도 그런 말 했지만 소셜 스킬, 그걸 배울 수 있는 곳이잖아요.
-저는 자퇴 하려는 이유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학교 수업을 안 들어도 검정고시와 수능으로 정시를 갈 수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면 자퇴를 말릴 수 없을 것 같아요.
학부모들과 이야기 나눈 후, 실제 고등학교 학업중단 학생의 학년별 상황이 어떤지 [학교알리미]를 통해 알아봤다. 2022학년도 학업중단 학생은 전국 1.9%, 서울시 1.9%, 강남구 1.9%, 경기도 2.1%, 시흥시 1.8% 등으로 나타났다. (23년 5월 공시 기준)
학업중단에는 자퇴, 퇴학, 기타 사유로 인한(사망 등) 제적 등이 포함되지만 퇴학 및 기타 사유가 극히 드물다고 본다면 대부분이 자퇴했다는 얘기다. 학부모들의 말처럼 고2, 3학년 자퇴율보다 고1 자퇴율이 훨씬 높았다.
’입시 전략을 위한 자퇴=트렌드’라는 건 티처스에 나온 일타강사가 말했듯 최상위권 극소수의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퇴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한 다리만 건너도 자퇴한 고교생 지인이 있다고 말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현재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교생 자퇴와 관련된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다는 뜻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입시 전략을 위한 자퇴니, 내신 세탁이니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입시 제도를 좀 세탁하면 좋겠어요.
-오직 입시 전략 때문에 자퇴하는 아이들은 수능준비에 일반 공교육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좀 안타까운 현실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