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칼럼] 홍한마루 원장의 교육칼럼 - 학습과 유전자 그리고 우리의 인재상 (下)

기사입력 2023.05.16 12:10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편에 이어>

    너무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유전자와 인공지능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겠다.

    우선 유전자는 진화론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세대가 거듭될수록 특정한 유전자들만 살아남고 다른 유전자들은 도태된다.

    쉽게 말해 매력적이고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지는 개체는 결혼해서 자손을 낳지만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가지는 개체는 자손을 남기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생물체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화 한다. 부모와 자손의 모습이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소한 변화라도 일관성있게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 생명체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매력적이지 않고 생존에 유리한 것도 없는 개체의 유전자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 버린다. 자손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전자가 살아남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기후가 덥고 해가 강한 초원에서는 검은 피부가 유리하고, 해가 잘 나지 않고 추운 지역에서는 흰색 피부가 유리하다.

    마치 농구선수 중에는 키 작은 사람이 선발되지 않고, 경마 선수 중에서는 무거운 사람이 선발되지 않는 것처럼, 더운 곳에서는 흑인 유전자가 살아남고 추운 곳에서는 백인유전자가 살아남은 것이다.(다양한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단순화 시켰으니 전문가인 독자는 그러려니 하자.)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의 모습과 능력은 어떻게 변할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 어떠한 게임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생존하는 유전자의 특성이 결정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과 면접 질문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은 유전자를 선별하는 선별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녀가 성선택(배우자의 선택)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전자의 선별자가 되는 것처럼, 기득권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전자의 선택권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선택받는자와 선택하는자 간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컴퓨터 시스템이 인간의 학습, 추론, 문제 해결 등의 지능적인 작업을 모방하거나 수행하는 분야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가지도록 설계되어 다양한 작업을 자동화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첫 번째는 좁은인공지능이며, 특정 작업에 특화된 인공지능이다.

    두 번째는 강한인공지능으로, 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단 아직까지 강한 인공지능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우리가 현제 보고 있는 알파고‘chat gpt’ 혹은 바드같은 인공지능은 좁은 인공지능이다.

    좁은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간단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은 현재 상황을 분석하여 최상의 수를 결정하고, 'chat gpt''바드'는 사용자의 질문에 기존의 언어 데이터를 활용하여 최적의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최적일 뿐 정답은 아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좁은 인공지능이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예상된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이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여 학습 패턴을 분석하는 좁은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면, 여기에는 학생들의 학습 장애 및 학습 능력에 관한 유전적 정보도 포함될 수 있다.

     

    피를 수혈하여 유전자를 분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량의 학생들을 분석함으로써 공통적인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과정은 완벽하게 개인별로 맞춤화되며 집단 수업의 필요성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이 남는다.

    바둑 인공지능은 바둑을 이기기 위해 개발되었고, 대화형 인공지능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렇다면 학업 인공지능은 무엇을 위해 개발될까? , 무엇을 최적화 시킬 것인가? 성적? 성적이라면, 내신성적을 말하는가 아니면 수능성적을 말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성적을 최적화 시키고자 한다면, 인공지능은 과거에 쪽집게 과외선생들이 시험문제가 무엇이 나올지 맞추듯이 시험문제를 미리 예상하는 형식으로 학생성적을 최적화 할 가능성이 크다.

    즉 정말로 필요한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성적 좋은 바보들이 양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당장 대학교 내에서도 레포트과제는 chat gpt로 인해 무력화될 판국이다.

     

    나는 학교시험이 무력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유전자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전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높은 지능을 갖춘 유전자나 낮은 지능을 갖춘 유전자가 자신들의 생존을 결정할 권한을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의 어떤 지능도 인공지능과는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유전자 능력을 최적화할 수 있을 것이며,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시험과 같은 특정 기준을 통해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의문과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질문하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김연아인가? 박지성인가? 방탄소년단인가? 봉준호인가? 허준인가?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