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The 인터뷰]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①

기사입력 2023.12.27 15:31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1.png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며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 제40대 국무총리, 제22대 KBO 총재를 역임했다. 2012년 동반성장연구소 출범 후 줄곧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IMG_4863.JPG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으로 동반성장 문화 조성과 확산을 위해 노력해 왔고, 작년 가을부터는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한국 인구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을 이야기해 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동반성장’의 키워드를 모르는 세대를 위해 동반성장을 설명해 주신다면?

     

    동반성장의 주요 키워드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라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의 룰을 조금 바꾸자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경제는 수출 주도의 선 성장, 후 분배가 기본 전략이었어요. 특정 부문을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길 기대하는 이른바 ‘낙수효과’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죠. 이제는 ‘분수효과’가 중요해졌어요. 경제적 약자의 소득증대는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증가로 이어집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동반성장은 이런 낙수효과와 분수효과가 선순환적으로 결합할 때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간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총리 시절 한 중견기업인이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에 이민을 가겠다고 찾아온 것이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중견기업이 이런데 중소기업은 오죽할까...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가 발족됐는데, 그땐 정말 막막했습니다. 하하. 이 위원회에서 1년 반 동안 활동하다가 2012년 순수 민간연구소인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했어요. 2022년이 10주년이었죠.

     

    그간 한국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반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여러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동반성장 포럼을 개최했고, 그 결과를 책으로 발간하여 주요기관과 도서관에 배포하며 동반성장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해 왔습니다.

     

    납품가 후려치기, 구두 주문, 기술탈취와 같은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고 한국경제 전반적으로 불공정거래행위를 줄이는데 동반성장의 가치들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동반성장연구소가 그런 가치, 더불어 성장하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화 조성과 확산에 기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며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반성장포럼이 100회를 넘었습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동반성장이 한국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모두가 환영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여러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 등등. 그런데 벌써 포럼이 100회를 넘었고. 얼마 전 103회 포럼에는 130명이 참여했습니다. 

     

    포럼 100회를 맞이해서 동반성장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래서 한국경제가 ‘원 팀 코리아’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image02.png
    제100회 동반성장포럼에 연사로 나선 정운찬 이사장 (사진=동반성장연구소)

     

    ‘주식회사 한국’처럼 한 나라 경제를 기업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경제를 단순화하여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하고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 유익할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 경제가 처한 대내외적 환경이 달라졌어요. ‘주식회사 한국’은 너무 기업 위주의 시각을 제공합니다. 국가를 기업에 비유하다 보면 당연히 큰 기업이 부각되고 재벌 대기업 정책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비치는 것이죠.

     

    한국경제가 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한국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소득분배를 보면 2021년 세전 소득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4.7%, 상위 10%가 46.4%를 가져가고 있거든요. 분배가 악화된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영혼 없는 선 성장, 후 분배 정책에서 찾을 수 있고요. ‘주식회사 한국’의 환경에서는 균형 잡힌 정책이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한국경제를 스포츠팀에 비유해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스포츠 가운데서도 팀 단위의 스포츠, 가령 프로야구 같은 ‘팀 코리아’로 이해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야구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팀 성적과 분위기를 이끄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한두 선수 잘한다고 팀 전체가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죠. 스타 야구 선수뿐만 아니라, 중간층, 못하는 선수 모두 열심히 하고, 함께 잘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스타 선수를 대기업에 비유해 볼까요? 중간층 선수를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팀 코리아’가 되어 대기업과 함께 협력 중소기업도 상생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갈 때입니다.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열심히 해야 좋은 결과를 얻고 동반 성장할 수 있지요.

     

     

    국제무대로 진출한 스타 선수는 국민의 자랑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간 스타 선수 격인 대기업이 온전히 자랑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국제무대로 진출한 스타 선수들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을 때 우린 시기 질투보다 오히려 온 국민이 기뻐하고, 밤잠 설쳐가며 그 선수의 경기를 시청합니다.

    우리 국민의 재벌에 대한 마음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인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그 결과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이런 모습을 국민도 자랑스러워하겠지요. 다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재산상속하고 비관행적 일을 하는 일부 재벌 때문에 우리 국민이 재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대기업이 정도(正道)를 걸으며 기술 개발하고, 세계 시장을 주름잡으면 국민의 선망 대상, 스타 선수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기업의 정도(正道) 경영과 관련해서 요즘 기업들, ESG 경영이 화두인 것 같아요.

     

    1970년에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에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란 글을 발표해서 50년간 인용돼 왔어요. 그런데, 그가 재직했던 시카고대학의 Stigler Center에서 2020년에 콘퍼런스를 열고 밀턴 프리드먼 50년 후(Milton Friedman 50 Years Later)라는 전자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기업의 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의미합니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를 기후 위기로부터 지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경영으로까지 범위가 넓혀졌습니다. 기업이 이윤 추구는 물론, 환경과 사회 전체의 이익도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돈벌이만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자본주의가 돼야 합니다. ESG 경영이 추구하는 가치가 동반성장이고, 동반성장은 ESG를 통해 실현될 수 있어요.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이다, 그런 말씀인 것 같아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아무리 동반성장을 해서 풍요로운 경제 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어도 물려줄 다음 세대가 없으면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인구 유지선인 2.1명을 훨씬 밑돌고,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보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반응한 것이 과장이 아니에요. 

     

    대한민국이 이룬 경제성장이 지금 사는 세대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동반성장 사회는 전 세대에 걸쳐 경제·사회적 혜택이 공유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는데 중요한 전제조건이고요. 관련하여 기업들도 ESG 경영의 일환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구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해 줄 필요가 있죠. 국가 정책의 목표도 지금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등 여러 노력으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기에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작은 디딤돌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