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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같이BOOK] _ '솔이의 추석 이야기'

기사입력 2023.12.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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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울에 만나는 따뜻함,
    고향을 방문하는 설레는 기억,
    애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솔이의 추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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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쌀쌀해지며 슬슬 잎이 지기 시작하는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에서는 오히려 무상감의 싹이 자라난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세월의 흐름을 몸소 느끼며 이 세상에 그대로인 것은 없다는 순리를 확인하는 순간, 존재의 나약함 또한 실감을 하게 된다. 그 실감의 크기는 살아낸 세월과 비례하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을 찾는 것은 아닐까. 

     

    변하지 않는 것 중의 으뜸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일 것이지만,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고향 역시 어머니의 품만큼이나 강력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추운 날씨에 고향을 찾는 것은 농한기와 관련된 농경 시대의 유습보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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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도시에 사는 솔이네 가족이 추석을 맞아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그림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선 자연스레 백석 시인의 <여우난 곬족>이 떠올랐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 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처럼 이 시에서 시인도 고향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고향에는 가족과 가족애와 어렸을 적 즐기던 신나는 놀이와 군침 도는 음식들이 있다. 그리고 시인은 그 고향을 감각적으로 회상해 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기억 저편의 고향을 또렷이 기억하게 한다. 그런데 명절날 고향의 따뜻한 풍경의 이면에는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가 빼앗아 간 고향의 모습을 기억하려 애쓰는 시인의 모습이 숨어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이제는 사라진 고향과 사람들.

     

    <솔이의 추석 이야기>와 <여우난 곬족>의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 시의 고향길은 과거형이지만, 솔이가 할머니 댁을 찾아가는 추석 이야기는 현재형이다. 시인은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솔이는 아빠 손을 잡고 언제든 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언제든 내가 꼬마였던 옛 동네로 떠날 수 있다. 우리에게 고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현재의 기억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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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벼들이 가득한 시골 동네로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할머니를 즐겁게 찾아가는 솔이의 이야기도 이미 3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5월 5일은 어린이날일 뿐이고, 8월 15일은 광복절일 뿐이다. 밸런타인 데이와 할로윈은 알아도 칠월칠석은 모르는 대한민국에서 추석을, 고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꼰대의 라떼 사랑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짧은 그림책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주는 고향의 정겨움이 아직 살아 있음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에 리뷰를 단 어린이들의 글을 읽어 보면, 고향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따뜻하게 남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벌써 연말연시다. 어느덧 우리는 명절 연휴면 고향보다 해외 여행을 더 많이 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변화해 가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다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황석영 작가는 <삼포 가는 길>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정 씨의 모습을 통해 마음의 정처를 잃은 우리 사회를 담아냈지만, 정 씨의 고향은 그의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설에는 솔이네처럼 가족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웃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아름다운 고향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애써 찾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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