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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배우 차인표 ②

기사입력 2023.11.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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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감독, 소설가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중 가장 본인과 잘 맞는 분야는 뭘까요?

     

    가장 오래 한 직업은 배우입니다. 올해 30년째니까요. 그런데 가장 저와 잘 맞는 직업은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혼자 쓰면 되기에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창작의 기쁨을 누리고,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꿈같은 모험을 할 수 있지요. 다만 배우와 비교하면 눈에 보이는 보상이 적다는 흠이 있는데, 저에게는 그게 흠이 아닙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보상의 개념이 달라지니까요. 당분간은 배우와 소설가로서 병행하게 되겠지만, 더 나이가 들고 배우로서 은퇴할 시점이 되면 전업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글을 쓰는 것보단 스토리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작게는 집 짓는 것과 비슷하고 크게는 천지를 창조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신을 닮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스토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 ‘창작’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단편도 아니고 장편을 벌써 여러 권 쓰셨더라고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썼습니다. 그게 1998년 경입니다.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캄보디아 섬에서 발견되어 한국으로 입국한 훈할머니라는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이 할머니가 만약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지 않으셨다면,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라는 질문이 떠올라 소설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 글 속에 할머니는 백두산 자락 한마을에 사는 순이라는 16세 소녀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가 드라마, 영화 촬영이 바빠져서 몇 달간 중단했더니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었어요. 결국 쓰다 말기를 반복하다가 10년 만에 완성하여 2009년 [잘가요언덕]이라는 저의 첫 장편소설로 출간되었습니다. 두 번째 소설 [오늘예보] 역시 글을 쓰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느라 약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완성되었고요. 한번 동력을 잃고 멈춰 버리면 재가동하기 어려운 엔진처럼, 뛰다가 멈추면 다시 뛰기 어려운 마라토너처럼, 소설 쓰기도 멈추면 안 되는 작업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죠.

     

     

    글을 쓰는데도 루틴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드셨군요?

     

    맞아요. 글쓰기가 지속되지 않으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가슴 설렘과 감흥,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어떤 가치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루틴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작년에 발표한 소설 ‘인어사냥’이 그 결과물입니다.

     

    인어사냥은 2021년 가을 석 달 동안 초고를 완성했는데 새벽에 기상, 운동 등 일과를 아침 8시 전에 마치고, 하루에 할당된 목표 분량을 쓰는 식의 루틴을 만들어서 썼습니다. 가장 중요한, 쓰다가 멈추면 안 된다는 규칙을 깨지 않도록 아무리 바빠도 연이틀은 쉬지 않고 썼습니다. 그랬더니 석 달 만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이후 드라마 한 편을 석 달간 촬영하고 난 후, 다시 4개월간의 수정을 거쳐 출간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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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 이야기는 많잖아요. 그래서 더 새로워야 했을 것 같거든요.

      

    수많은 인어 중 조선 시대의 문신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나오는 우는 인어가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조선의 한 어부에게 잡힌 인어가 흰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울었다고 해요. 왜 울었을까, 누가 보고 싶었을까? 인어에 대한 연민이 생겼어요. 그건 곧 글을 쓸 가치가 생겼다는 거예요. 수개월이 걸릴지 수년이 걸릴지 모를 장편소설 쓰기라는 긴 여행을 떠날 이유가 생긴 거죠. 그 긴 여정의 끝에 인어는 나를 거울 앞에 데려다 놓고 나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했어요. 먹으면 천 년을 산다는 ‘인어 기름’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났고, 그 인어 기름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는 근원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연결되었죠.

     

     

    어릴 때부터 기발한 생각 잘하셨어요? 차인표 어린이는 뭐 하고 놀았나요?

     

    동생과 더불어 “영웅 역할놀이”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동생이 같이 안 해주면 혼자 하기도 했고요. 놀이란 다른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영웅(텔레비전 영화 주인공일 때도 있고, 만화주인공일 때도 있고, 혹은 지어낸 허구의 영웅일 때도 있고)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며 노는 것입니다. 가상의 장애물이나 악당을 정하고, 나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어, 주로 역할놀이를 자주 하며 놀았던 것 같습니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소설도 기대해 보게 되는데요? 지금 준비 중인 소설이 있나요?

     

    구상하고 있는 스토리들이 몇 가지 있어요. 요즘은 주로 역사 판타지물에 관심이 있습니다. 계속 꾸준히 소설을 써나갈 계획이고요.

     

     

    마지막으로 [디지털에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저는 1997년 군에서 전역한 직후, 30세 때 중국 작가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연로했음에도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당시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니 이제야 작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삶은 그야말로 배움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초중고 시절의 공부는 배움의 끝이 아닌 시작이고, 배우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듯이, 계속 배우지 않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으니까요. 배운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나 내 생각에만 갇혀 있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둔다는 뜻이 아닐까요?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듯이, 배우지 않는 삶은 아주 고단하고 어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대로 배우는 삶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겠지요. 배움을 늘 가까이하는 독자 여러분, 배움으로 기회를 얻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나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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